무함마드 형상화 금지와 이슬람 미술의 특성
우상숭배를 방지하기 위해서 예언자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이슬람 세계에서 금지되었있습니다. 무함마드의 형상화 금지가 나중에 이슬람 세계의 예술 장르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이슬람 세계 내에서의 논쟁, 그리고 또 이슬람 세계와 서구 세계 간의 문화/정치적인 갈등에 대해서 잠깐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우리가 설명을 했듯이 이슬람 세계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그림이나 조각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우상숭배로 여겨서 철저히 금지되었습니다. 그리고 무함마드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유일신 알라도 어떤 식으로도 형상화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이슬람 세계에서는 동물의 형상도 상당히 엄격하게 제한을 했는데요. 물론 일반적으로 집이나 아니면 궁전 같은 데서는 동물의 형상이 예술적인 장식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허용이 되었지만 종교 건축물, 이슬람의 예배당인 모스크와 같은 종교 건축물에서는 동물의 형상을 그리는 것조차도 금지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동물의 형상을 묘사하는 행위는 알라만의 유일한 권한인 생명 창조 능력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 건축물에서는 무함마드의 얼굴도 그리지 못하고요, 그다음에 알라도 어떤 식으로 든 형상화될 수가 없고 또, 동물의 모습도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모스크와 같은 종교 건축물에서는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표현 양식이 발전하게 되는데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서예'와 '아라베스크 문양'의 발전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서예 양식의 발달
이슬람 세계에서는 '서예 양식'이 매우 발전을 했는데요, 그 배경이 된 것은 무함마드나 알라를 형상화해서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바로 쿠란이 적혀진 신성한 언어인 아랍어로 무함마드를 쓰고 알라를 쓰는 것은 허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이죠. 그래서 다양한 서체로, 예술적인 미를 가미한 다양한 서체로 쿠란의 문구나 또는 예언자 무함마드, 알라를 쓴 서예 예술들이 많이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예 이외에도 또 기하학 적인 직선이나 곡선, 그리고 다양한 식물 문양을 이용한 아라베스크 양식도 발전을 합니다. 그래서 이슬람 세계의 모스크에 가보게 되면 다양하고 화려한 서체로 쓰여진 서예와 화려한 색상을 가진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반복되어서 모스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서예와 아라베스크라는 이슬람 고유의 예술 양식이 발전하는 것은 바로 무함마드와 알라에 대한 형상화가 금지된 종교적인 배경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슬람 세계에서 발전한 독특한 예술적인 장르로 세밀화가 있습니다.
세밀화 장르
세밀화는 아까도 얘기하듯이 책에 들어가는 삽화 형식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현재 이 자료 화면에서 보는 것과 같은 이런 세밀화를 보았다면 이 세밀화는 십중팔구 아랍 지역이 아닌 페르시아 지역에서 그려진 것입니다. 아랍 사람들은 이런 식의 표현 양식도 매우 엄격하게 금지를 했는데요,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면은 이슬람은 처음에 아라비아반도의 아랍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종교였죠. 그렇지만은 7세기 중반에 아랍 무슬림들이 사산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그다음에 페르시아 지역에 이슬람이 전파되었는데요, 나중에 페르시아 사람들은 아랍 이슬람에 정복되고 난 다음에 대부분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이슬람화가 되어 갑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슬람화가 되었지만 과거에 이슬람에 정복되기 이전에 자신들의 고유문화와 종교를 갖고 있었죠. 그래서 이슬람에 정복되기 이전부터 페르시아 사람들은 약 천년 동안 조로아스터교라는 종교를 믿었고요,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단 그 시기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신을 형상화해서 그림으로 그려 넣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아랍에 의해 정복되고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페르시아 사람들도 분명히 아랍인들로부터 무함마드를 그리지 말라라는 그런 계율을 배우긴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문화 전통에 의해 회화적으로 형상화해서 표현하는 그런 문화에 익숙했고요. 그래서 분명히 무함마드를 그리지 말라는 계율은 배웠는데 상당히 그리고 싶은 욕망을 떨쳐버리기가 힘들었던 것이죠. 그래서 페르시아 권에서는 무함마드를 그리되 무함마드를 그리지 않는 이런 절충적인 예술 표현 방식을 택했고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세밀화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 보면 무함마드는 그리되 무함마드의 얼굴은 하얀색으로 도배하는 이런 절충적이고 우회적인 표현 양식을 택했던 것이죠. 그래서 이런 세밀화를 봤다면 아까도 얘기하듯이 이런 그림들은 대부분 페르시아 문화권 내지는 페르시아의 회화 양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터키, 인도 지역에서 우리가 이런 세밀화를 볼 수가 있고요, 아랍 사람들은 이러한 표현 양식조차도 불경하다고 생각을 해서 이런 그림은 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같은 이슬람이지만 또, 어떤 문화권에 속하느냐에 따라서 이슬람을 해석해 나가는 방식, 그다음에 이들의 예술적인 표현 양식도 다를 수가 있다 라는 것 우리가 유념해야 될 것 같습니다. 무함마드를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 아랍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은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런 아랍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의 표현 방식의 차이는 오늘날 순니파 이슬람과 시아파 이슬람 간의 정치적인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아랍 사람들은 오늘날 대부분 순니파 이슬람을 따르고 있고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마는 대부분의 아랍 사람들은 순니파 이슬람을 따르고 있고요, 그다음에 대부분의 페르시아 사람들은 시아파 이슬람을 따르고 있습니다. 앞에서 아랍인들과 페르시아 사람들은 세밀화를 놓고도 상당히 의견을 달리했습니다.
순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
이런 전통적인 예술 방식에 대한 이해의 차이는 오늘날 영화 제작을 둘러싸고 순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2015년도에 시아파를 믿고 있는 이란에서 제작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무함마드가 태어나서 12살까지 성장하는 유년 시절의 성장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요, 상당히 이란에서 국가적으로 많은 투자를 해서 만든 블록버스터급 영화였습니다. 당연히 이란 지역에서는 많은 호응을 얻고 크게 히트 쳤던 작품이었는데, 여기서도 무함마드는 전통적인 페르시아의 세밀화 표현 양식에 따라서 무함마드의 얼굴이 하얗게 묘사되거나 아니면 무함마드의 뒷모습만 멀리서 묘사하는 그런 우회적인 표현 양식을 택했습니다. 대부분의 아랍인 순니파 무슬림들은 이 영화에 대해서도 상당히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일부 순니 종교 학자들은 이 영화를 금지시켜야 된다라는 종교 해석을 내놓고 이 영화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함마드를 둘러싼 표현 방식의 차이는 이슬람 세계와 서구 유럽 간의 정치적, 문화적인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05년 덴마크 신문인 '율란츠 포르텐'에서 게재된 무함마드를 희화화한 만평 사건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이 만평이 덴마크 신문 '율란츠 포르텐'에 게재되었을 때 전 세계 무슬림들은 극도의 분노에 이르렀고요, 그래서 분노한 덴마크 내 무슬림들은 중동 지역 내 무슬림들을 선동해 덴마크 대사관을 불태우는 등 폭력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시리아, 베이루트, 나이지리아, 리비아, 파키스탄 등에서는 약 1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왜 무슬림들은 그렇게 분노를 했을까요?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첫 번째로는 이들에게 금지되어 있는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려 놓은 것이죠. 그런데 이슬람 세계에서는 존경의 의미를 담는다고 하더라도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는 것조차도 엄격하게 금지가 되어 있고, 심지어는 무함마드를 우회적으로 표현해서 하얀색으로 도배한다든지 멀리도 뒷모습을 잡는 것조차도 순니파냐 시아파냐에 따라서 논쟁이 일 정도인데 무함마드 얼굴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그 위에 불타는 폭탄까지 얹어 놓은 것이죠. 바로 무함마드가 테러리즘의 온상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대해서 많은 무슬림들은 극도의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이후에도 서구 유럽과 이슬람 세계 간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바로 서구 유럽에서는 어찌 되었든 간에 언론의 자유는 보장돼야 된다 라는 논리를 내세웠고요, 반면에 이슬람 세계에서는 언론의 자유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문명, 다른 문화에 대해서 비하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양 문명 간에 오랜 논쟁이 지속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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